• 마을공동체의 희망, 마을공동체 미디어

    봄내미디어협동조합 이사
    김 동 규



    출처 : 횡성주민방송



    “자~~ 이제 준비해 주세요. 5분 뒤에 들어갑니다~”
    “올 스탠바이!”
    “자, 3분전!...1분전! ... 자, 10초전입니다! 5, 4, 3, 2, 1, 큐”

    FD가 조금은 긴박한 느낌으로 제작 스탭들에게 힘차게 외칩니다.
    MC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바짝 긴장한 모습이 뚜렷하지만 웃음 띤 얼굴로 또박 또박 ‘오프닝 멘트’를 칩니다.
    이어서 PD가 모니터의 화면을 보며 나지막하면서도 분명하게 스위처에게 ‘콜’을 합니다.

    “카메라 포 스탠바이, 카메라 포 컷, 카메라 투 스탠바이, 카메라 투 컷”

    스위처도 PD의 콜에 맞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스위칭에 집중합니다.
    그렇게 NG 한번 없이 60분이 훌쩍 지나갑니다.



    출처 : 횡성주민방송



      얼핏 들으면 어떤 ‘방송국’의 제작현장 같죠? 그런데 이곳은 ‘방송국’이 아니라 횡성 주민방송 제작단의 제작 실습 현장입니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이렇게 PD, 스위처(카메라가 잡은 영상을 스위칭하는 영상 스위처를 담당하는 사람), 카메라맨, 오디오맨 등의 역할을 하며 방송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물론 송출은 다 짐작하시는 대로 O튜브를 통해서 했습니다.) 지역방송사에서 오랫동안 뉴스 카메라를 잡으신 베테랑 경력자 한분을 빼고는 열네 분 모두에게 ‘멀티카메라 제작’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저 너머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2시간씩 10번에 걸친 ‘멀티카메라 제작 교육’을 받고는 모두 아주 빠르게 방송제작 기초를 습득하고 또 익숙해 지셨습니다. 예정대로 진행이 된다면 이 글을 여러분들이 읽게 될 즈음에는 아마도 ‘횡성주민방송’이 개국해 있을 겁니다.



    출처 : 횡성주민방송



      ‘횡성주민방송’이 처음 싹을 틔운 것은 지난 해 여름이었습니다. ‘횡성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추진위원회’의 위원장님과 미디어분과 위원님들을 그때 만났습니다.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학생들에게 촬영과 편집 중심의 영상제작 교육을 하는 ‘미디어센터’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분들께 ‘마을공동체 미디어’를 제안했던 겁니다. 다행히 몇 차례 만나 자문을 하고 회의를 거치면서 ‘마을공동체 미디어’에 대해 공감해 주시고 그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횡성주민방송 제작단’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멀티카메라 제작 교육을 하기로 했습니다. 멀티카메라 제작(Multi Camera Production)이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활용해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으로 TV의 토론, 토크 쇼, 버라이어티 쇼 같은 TV 프로그램들이 이렇게 제작합니다. 멀티카메라 제작은 PD, 카메라맨, 오디오맨, 스위처, FD 등 여러 직능이 모여 제작하는 것이기에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 처음 얼굴을 대하는 교육생 열다섯 분들의 예비 주민방송 제작단에게는 팀워크를 다지는 데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출처 : 횡성주민방송



       사실 ‘멀티카메라 제작 교육’을 추천한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바로 ‘마을공동체 미디어의 지속가능성 담보하기’였습니다. 마을공동체 미디어가 건강한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주민들 간에 소통과 협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실무적으로는 영상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꾸준하게 영상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되어 지속적인 미디어 활동으로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전에 미디어 관련 기관들이 ‘마을(공동체)미디어 교육’를 하면서 주로 주민들이 참여해 짧은 다큐멘터리나 영화, 드라마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색다른 경험 속에 많은 흥미를 느끼고, 함께 모여 시사회를 하는 동안 즐거워하며 공동체성을 느끼곤 했습니다. 문제는 교육(프로젝트)가 끝나면 작품이 하나 남을 뿐 주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고, 일상적인 영상 제작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큐멘터리나 영화, 드라마는 카메라 한 대를 이용해 제작하는 원 카메라(One Camera)제작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의 촬영 편집 경험이 쌓여야 하는데 주민들이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멀티카메라 제작은 장비만 제대로 갖춘다면 10번 정도의 교육으로도 충분히 꾸준히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봄내미디어협동조합과 강원시청자미디어센터의 도움을 받아 멀티카메라 제작 장비를 갖추고 저녁 시간을 이용해 2시간씩 모두 10차례 실습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교육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실제 마을공동체 미디어 활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교육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실습을 하면서 ‘횡성 비행장 소음 문제’같은 횡성의 현안을 다루는 시사 토크, 사과를 재배하는 농민을 초대해 ‘횡성 사과’를 소개하는 라이브 쇼핑, 공예 강사님을 초대해 실시간으로 양말목 공예 체험 방송을 했습니다. 이렇게 실습을 하면서 제작단 교육에 참여하신 분들은 앞으로 ‘횡성주민방송’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감’을 잡으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시민성과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한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주민의 방송’. 주민들이 방송에 직접 참여하고 주도하는 횡성지역 마을공동체 미디어인 것입니다.

       앞으로 ‘횡성주민방송’은 주민들이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서로 나누고 토론하며 숙의하는 ‘공론장’ 역할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민자치 역량’도 키워지고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지방자치를 더 건강하게 정착시킬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리고 횡성 주민들의 삶과 이야기, 역사와 전통, 자연과 문화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지역콘텐츠 아카이브 기능으로 지역성을 지키고 살리는 일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봄내미디어협동조합 이사 김동규



       우리나라에는 마을 미디어, 공동체 라디오, 공동체 미디어, 커뮤니티 미디어 등 여러 다른 이름으로 ‘공동체 미디어’가 있습니다. 강원도의 ‘마을미디어’를 지원하는 강원시청자미디어센터(Gangwon Community Media Center)의 영어 이름에는 ‘커뮤니티 미디어’가 들어 있습니다. 서울시에는 ‘마을미디어’를 지원하는 ‘서울시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있습니다. 여기서 발표한 자료(2019)를 보면 마을(공동체)미디어가 서울에 80여개, 전국에 300개가 넘습니다. 영국과 호주는 커뮤니티 미디어(Community Media), 일본에는 소출력 라디오(대개 유튜브 채널 함께 운영), 미국에는 커뮤니티 TV 등 각기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마을(공동체)미디어가 많이 있습니다. 이들 공동체미디어는 라디오(소출력FM), TV, 온라인 방송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동체라디오가 2004년 8개로 시작해 올해엔 20개 공동체라디오가 허가를 받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마을(공동체)라디오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겁니다. 마을공동체 미디어는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가 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미디어 환경이 급변했습니다. 매스 미디어는 주류 미디어 자리를 유튜브 같은 온라인 미디어에 자리를 내준지 오랩니다. 예전엔 비싼 방송장비와 숙련된 방송 전문가들을 갖춘 방송사만 영상콘텐츠를 제작하고 송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영상콘텐츠를 만들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마트미디어 시대에 소비자(consumer)인 동시에 생산자(producer)인 프로슈머(prosumer)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렇게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져 그동안 소극적인 취재 대상에 머물렀던 마을 공동체도 이제는 직접 주민들이 나서서 마을 공동체를 위한 미디어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죠.

       ‘지역소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가 꽤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서울로 몰리고, 농촌과 어촌에는 나이 많으신 ‘노인’분들만 있는 데다 태어나는 아기들도 줄고 있으니 결국은 지역에는 살 사람이 줄어들어 결국 없어질 거라는 거죠. 2019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 지역은 2019년 5월 현재, 93개(40.8%)에서 105개(46.1%)로 12곳이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우리 강원도는 18개 시·군 중 15개, 그러니까 춘천, 원주, 강릉만 빼고는 모두 소멸위험 지역입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지역을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합니다. 강원도도 지역공동체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도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하는 일도 그런 노력 중 하나이죠. 도시재생사업이나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의 내용들을 보면 참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마을공동체미디어가 더해진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결국 지역공동체 사업은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끼리의 소통과 협력이 정말 중요한데 마을공동체미디어는 그런 소통과 협력을 만드는 중요한 중심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지방자치, 주민자치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 숙의와 공론장을 바탕으로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방법을 모색해가야 합니다. 여기에 마을공동체미디어가 공론장을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마을 회관에 주민들이 모여 마을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할 때 마을공동체미디어가 현장에서 생방송 중계를 하면 더 많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공유할 수 있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그 과정을 마을공동체미디어를 통해 공개한다면 갈등을 줄이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과정을 거치게 되어 건강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우리 강원도는 서울이나 경기도, 인천에 비해 마을공동체미디어가 활발한 편은 아닙니다. 그렇긴 해도 태백과 영월에서 공동체라디오 허가를 받아 개국을 준비하고 있고요, 원주, 철원, 춘천, 횡성, 정선 등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마을공동체 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준비하는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앞으로 강원도에서 마을공동체미디어를 하시는 분들끼리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기 위해 가칭 ‘강원시민(마을)공동체미디어협의회’같은 것을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출처 : 횡성주민방송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마을공동체 미디어를 만들 수 있을까요? 작은 마을마다 다 만들어야 할까요? 또 지역의 범위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형태는 오디오 중심의 ‘라디오’보다는 영상 중심의 ‘TV’가 좋습니다. 우리나라의 공동체라디오나 일본의 소출력 라디오 사례처럼 라디오를 하면서 ‘보이는 라디오’식으로 영상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만 <‘멀티카메라 제작’중심의 마을 공동체TV>가 구성원들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고, 미디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현실적으로 좋은 방법은 시나 군단위로 지역공동체미디어를 만들어 주요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각 마을 단위의 읍, 면, 동에 간단한 장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각 마을은 자체적으로 O튜브 같은 것을 이용해 온라인 방송 채널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동시에 시·군 단위의 지역 공동체미디어와 연계해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시청하는 방법은 스마트폰의 O튜브 채널을 이용해 시청하거나 좀 더 발전한다면 독자적인 영상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설과 장비는 공적 자금을 이용해 마련하고 운영은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이 출자해 만드는 ‘OO공동체미디어협동조합’에 위탁합니다. 시설과 장비가 갖추어지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인력, 사람입니다. 상근 인력은 2명 정도로 최소화하고, 카메라맨, 스위처 등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형 주민PD’를 양성해 상비 인력으로 활용합니다. 지역의 은퇴자나 경력단절여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10차시 정도의 교육 후 현장 적응을 거쳐 주민PD로 위촉합니다. 자, 이제는 운영경비를 어떻게 할지가 문제입니다. 각 시·군은 시정이나 군정을 홍보하기 위해 시정, 군정 뉴스를 제작합니다. 전문 제작업체에 맡겨 제작하고 있는 데, 이 제작비 중 일부를 지역 마을공동체미디어에 주어 제작을 맡기는 것입니다. 딱딱하고 형식적인 뉴스 형식보다 주민들이 직접 출연해 자유롭게 자기 마을의 소식을 전하는 매거진 형식으로 바꾸면 좋겠죠. 주민 리포터를 따로 뽑을 수도 있을 테고요, 각 마을, 동네의 동장님, 이장님들이 그 역할을 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기관의 영상 작업을 위탁 받고, 정부 사업과 연계해 사업비를 보조받는다면 2명의 상근 인력은 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상근하는 핵심인력입니다. 이것을 그 지역공동체 출신 청년이 한다면 마을공동체 미디어의 지속가능성을 한층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마을공동체 코디네이터’처럼 ‘마을공동체미디어 코디네이터’역할을 하면서 각 읍면동의 콘텐츠 제작 등 활동을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운영하는 마을공동체미디어는 아직 없습니다. 그 시작을 ‘횡성주민방송’이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편, 봄내미디어협동조합의 ‘춘천우리TV’는 O튜브 채널을 이용한 모델이 아닌 다른 독자 플랫폼 모델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한다면 이전에 없던 마을공동체미디어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귓가에 환청처럼 걱정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걸 우리가 할 수 있겠어?’ ‘시작은 어떻게 해도 끝까지 갈 수나 있으려나?’
    할 수 있고, 또 끝까지 가야만 합니다. 사실 우리 앞에는 지역소멸 이전에 전(全) 지구적 기후위기가 있습니다.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세대 간 계층 간 갈등, 경제적 양극화 등 우리가 극복해야할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작은 지역 공동체에서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면 언젠가는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그런 노력의 결실이 맺어질 것입니다. 거기에 꼭 필요한 것이 지역공동체미디어, 마을공동체미디어입니다.

    ‘횡성주민방송’ 준비 과정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참여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있었고 그것이 우리 이웃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상을 하며 글을 마칩니다.

    “자, 준비해 주세요~~ 10분 전입니다. 오늘 우리 마을은 장담그기, 옆 마을은 동네 축제를 생방송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다들 준비해 주시고요~~”
    “카메라 1번 감독님, 어제 송아지 받으셨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오늘 특별히 잘 부탁드립니다.”
    “5분 전 올 스탠바이~~”
    “지금 현재 동시접속자가 3백명입니다.”
    “면사무소하고 경로당, 마을회관에도 방송 잘 나가고 있죠?”
    “5분전!”
    “와~ 이거 생방 몇 번을 했는데도 심장이 막 쿵쾅대네. 떨려 죽겠어”
    “그 맛에 하는 거지, 뭐”
    “자 10초전! 5, 4, 3, 2,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