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박한 마을과 삶을 그린, 미국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

    “우리는 열정이 있는 한 늙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늦지 않은 나이는 언제일까요. 30살에 발레를 시작한다고 하면, 모두 너무 늦었다고 할 것입니다. 75세의 나이는 어떤가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보다는, 일구어놓은 삶을 돌보고 만끽하는 나이로 여겨지곤 합니다. 여기 미국의 국민할머니 이자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는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으며, 75세의 나이에 처음 그림을 시작하여 세상을 떠난 101세까지 모두 16,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2006년에는 <슈거링오프>라는 그녀의 작품이 120만 달러(한화 약 14억 원)에 팔리기도 했을 만큼, 국민적 사랑과 명성을 가진 화가입니다. 또한 1953년 세계적인 매거진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고, 1960년(100세)에는 뉴욕에서 그녀의 생일을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했습니다. 그녀의 삶 역시 과거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870년대 미국, 그녀는 어릴 때부터 부유한 집의 가정부로 일해야 했고, 이후 농부에게 시집가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거나 버터를 만들며 생계를 일궈나갔습니다. 그녀는 자수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70대에 실을 꿰기가 어려워지자 그림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찾았습니다. 그녀는 바로 자신 주변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았습니다. 농장의 모습, 마을 사람들의 일상, 마을의 소박한 풍경을 그렸습니다.



    “모지스 할머니가 그린 단순한 농촌풍경은 우리의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작품 속 빛나는 컬러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뉴욕타임즈> The New York Times




    출처 : 타임즈홈페이지



    슈거링오프 (1955)
    출처 : https://www.wikiart.org



    사과잼만들기(1944-1947)
    출처 : https://www.wikiart.org



      2006년 슈거링오프라는 그녀의 작품은 120만 달러(한화 약 14억 원)에 판매되었습니다. 슈거링오프란, 단풍나무 수액을 받아 시럽을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시럽은 보통 빵에 곁들여 먹고, 캐나다 아침 식탁의 필수요소이며 미국에서도 아주 대중화된 요리입니다. 1870년대 후반 미국 버몬트 마을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는 겨울 동안은 단풍나무에서 수액을 받아 밤낮으로 졸여서 단풍나무 시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농촌 마을에서 식혜, 막걸리, 조청 등을 오랜 시간 만들어 판매하는 것과 비슷한 풍경일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 온 마을 사람들이 협동하여 단풍나무 수액을 받고, 시럽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또한 달콤한 시럽을 먹고자 여기저기 기웃대는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합니다. 현대에는 많은 것들이 공산품화 되었지만, 여전히 마을 곳곳에서는 협동작업이 남아있습니다. 겨울철이면 마을 사람들 전부 모여 김장하는 모습, 농번기에 서로 품앗이하는 모습, 고되지만 이웃이 함께 있기에 힘이 되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보면 이러한 향수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슈거링 오프는 버몬트에서의 오랜 행사였어요. 설탕을 제조할 때 모인 꼬마들에겐 즐거운 파티였죠.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시럽을 먹고 달콤함을 기억하며 집으로 돌아갔어요.”

    - 모지스할머니 -




    봄날 (1953)
    출처 : http://www.artnet.com



    오래된 오크물동이 (1947)
    출처 : Google Images



    마을축제 (1950)
    출처 : Google Images



      그녀의 그림을 보면 소박한 시골 마을의 목가적인 풍경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 한가지 행동에 집중하는 그림이 아니라, 전체의 조화를 담은 모습입니다. 모두 저마다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음에도, 산만해 보이지 않고 전체적인 주제 아래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향유하고 있는 공통된 정서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농어촌 마을은 절기마다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삶의 방식이 비슷하기에 공동체의 유대감은 더욱 깊을 것입니다. 각 지역의 개성을 살려 지금에 맞는 방식으로 공동체성을 회복한다면,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유대감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모지스 할머니는 인생의 끝자락에 미술이라는 재능을 꽃피우고 인정받았습니다. 그녀는 어려웠던 시절 여느 사람들처럼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농부의 아내로 살며 생계를 위해 분투했습니다. 그녀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전문적인 미술교육도 받을 기회가 있었고, 체력적으로 건강한 좀 더 어린 나이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이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을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신이 기뻐하시며 성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나이가 이미 80이라 하더라도요”

    - 모지스할머니 -




      그녀에게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노동의 고단함에서 내려와 마을의 모습을 관조하며 바라볼 수 있게 될 만큼의 시간, 아이들을 먼저 떠나고 상처가 아문 곳에 자리 잡은 초월적인 사랑. 그녀의 그림은 그녀의 소박한 일생이 녹아있기 때문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동도 더 크게 다가옵니다.